Skip to content

한 걸음 한 걸음, 오르시아 심재선 장인의 금빛 이야기 (1부)

오르시아 심재선 장인의 주얼리 외길 인생

심재선 장인의 길고 고된 여정을 단순한 숫자와 타이틀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주얼리를 넘어 한 편의 시, 한 권이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2019년 특별상을 거머쥔 ‘제20회 한국귀금속공예 보석가공기술경기대회’는 그의 장인정신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일본 엑설런트 주얼리 TOP10″에 선정된 심재선 장인의 작품

📝 오르시아 심재선 장인 이야기 목차 ​

– 1부 –

• 쉽지 않았던 ‘손일’의 시작
• 해외로 뻗은 장인의 발걸음
• 계속된 배움, 손수 ‘캐드’ 작업까지 ​

쉽지 않았던 ‘손일’의 시작 ​

“70년대 후반, 업계에 들어왔습니다.
시골에서 진학을 못하고 있다가, 옆집 아저씨 소개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 “

당시 기술을 익히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소위 맞아가며 배운 세대이지요.” ​

심재선 장인의 ‘손일’의 시작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이웃집 어른의 소개로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이내 주얼리(세공, 손일) 업계에 입문하게 되죠. 아무도 몰랐지만, 바로 그 장면이 주얼리 업계 장인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

상경 후 일상은 고됨의 연속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밑바닥’을 기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일부터 주어진 일들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해나갔습니다. 그의 첫 작업은 심부름과 간단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선배들의 연장을 갈아두는 일, 무더운 날 옆에서 부채질을 하는 일 모두 그의 몫이었습니다. ​

당시 주얼리 업계, 특히 공장의 환경을 오늘날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모든 게 수작업이었고 그로 인해 각 공정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불통으로 땜질을 하고, 불순물은 세척기조차 없어 칫솔로 일일이 닦아내던 시절. 심재선 장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인내와 근면성실함, 세심함을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면서 ‘그런 점이 사실 지금의 작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

40년 전 기억을 생생히 전해주는 심재선 장인

심재전 장인의 해외로 뻗은 발걸음 ​

심재선 장인은 업계에서 ‘한미일’ 3국에서 인정받은 장인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 특유의 완벽함으로 인정받은 그는 선배의 추천으로 일본 주얼리 업계에 도전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오랜 경험을 미국 문화에 결합시켰죠. ​

그에게 있어 일본과 미국에서의 경험은 주얼리 제작 여정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장을 열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세밀함과 정밀함의 가치를 깨닫게 했고, 미국에서는 창의력과 대담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1. 일본 특유의 ‘정확함’

일본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작업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첫 도전이었습니다. 일본의 주얼리 제작은 그 세밀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일본 장인들의 작업 태도를 보며, 주얼리 제작에 있어서의 ‘정확함’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경험했습니다. 일본 장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자신의 작업에도 이런 정신을 반영하는 계기가 됩니다. ​

2. ‘대담하고 독창적인’ 미국

미국에서의 생활은 전혀 다른 종류의 배움을 선사했습니다. LA의 다이내믹한 주얼리 시장에서는 보다 대담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미국의 주얼리 디자인은 크기와 형태 면에서 더 자유롭고 실험적이었으며, 이는 그가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자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보다 대담한 창의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작업 중인 심재선 장인

심재선 장인은 이 두 문화에서 배운 것을 개인 작업에 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느 문화에도 치우치지 않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그만의 주얼리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조화,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이 느껴집니다. 모두 위와 같은 다양한 경험과 배움에서 비롯된 결과. ​

일본과 미국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단순한 기술적 스킬 이상의 것, 즉 다른 문화와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중입니다. ​ ​

심재선 장인의 계속된 배움, 손수 ‘캐드’ 작업까지 ​

심재선 장인이 캐드(CAD)를 배우기로 결심한 건 주얼리 제작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핸드드로잉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캐드 작업은 주얼리 디자인의 가능성을 대폭 확장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낯선 개념이 상당히 커다란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처음 캐드를 배운 건 지금으로 부터 약 8~9년 전, 미국에서 였습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캐드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어깨 넘어 배운 게 전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전문적인 캐드 학원을 다녔습니다. 실무에서의 경험을 덧대어 새로운 지식을 견고히 쌓았습니다.

그는 캐드 작업이 단순히 디자인을 디지털화하는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삽니다. 캐드 작업을 하는 이들 중 일부는 현장의 실제 상황, 예를 들어 제작 과정에서의 세세한 두께나 비율 조정 같은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현장의 지식&경험과 캐드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디자인과 제작의 간극을 줄이고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최근에는 머릿 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직접 현실화하는 작업에 매진 중입니다. 이는 오르시아를 넘어 한국 주얼리 디자인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 전에는 불가능했던 복잡하고 섬세한 디자인들도 이제 구현한 수준에 이르렀죠. ​

“또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예측할 수 있어요. 불필요하게
불어나는 시간이랑 비용을 크게 줄여주죠.” ​

실제 오르시아의 많은 제품들이 기획, 디자인 과정에서 심재선 장인의 피드백을 받아 탄생되었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에게 부족한 현장의 경험과 감각을 보완함은 물론, 직접 캐드 작업에도 참여해 전통적인 주얼리 제작 기술과 현대적인 디자인 도구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고객의 제품을 더욱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만들며, 주얼리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입니다.(2부에서 계속)


관련 글

2024년 오르시아 약속과 다짐 7가지
오르시아 반지 제작 참여 이벤트 “메이킹 클래스(Making Class)”
오르시아 솔직 리뷰, 장인의 손길로 빚어진 웨딩밴드는 어떤 느낌일까?
41년 경력 오르시아 공방장 박칠성, “결혼반지, 세상에 하나 뿐인 것이어야”
오르시아, 日주얼리 장인과 컬래버…플래티넘 웨딩밴드 ‘꼬리별·한울·다올’


인기 글 보기

결혼 예물반지 고를 때 '제작 방식' 확인해보세요. (단조와 주조)

결혼 예물반지 고를 때 '제작 방식' 확인해보세요. (단조와 주조)

크게 '단조'와 '주조'로 나뉘는 웨딩밴드의 두가지 제작 방식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다이아몬드 반지 리세팅 비용과 기준, 절차 안내(결혼반지 등)

다이아몬드 반지 리세팅 비용과 기준, 절차 안내(결혼반지 등)

오르시아 리세팅을 통해 여러분들의 추억을 재탄생시켜 보세요.
지젤(Giselle), 발레리나를 담은 웨딩밴드

지젤(Giselle), 발레리나를 담은 웨딩밴드

발레리나&발레리노의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이 담긴 웨딩밴드 '지젤(Giselle)'의 이야기

최근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