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시아의 시작, ‘한스 주얼리’
본격적으로 강남 진출 담금질에 들어간 한영진 대표. 종로에서 거둔 성과만으로 강남 진출을 결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컸던 성과만큼 느끼던 회의감도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심을 들여 만든 디자인들이 카피되어 시장에 유통되는 일이 허다했던 탓입니다. 추억이 스민 종로였지만, 이런 일이 거듭되며 경쟁력을 인정받고 유지해 갈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2005년. 좋은 연이 닿았습니다. 업계 선배에게 좋은 제안이 들어옵니다. 당시 한 공간에 웨딩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브랜드가 결집된 형태의 토탈형 매장이 우후죽순 생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샵인샵 개념으로 ‘한스 주얼리’라는 이름으로 주얼리(웨딩밴드) 브랜드를 런칭합니다. 오르시아의 독보적인 발걸음이 이 자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소는 옮겼지만, 방식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품 디자인 뿐만 아니라, 공간 디자인까지 커스텀할 수 있었다는 점. 몇 평되지 않는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나만의 크리에이티브를 새로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초의 공간이었습니다. 과거 ‘순금 디자인북’을 만들 때처럼 작은 소품 하나까지 손수 챙기며 한스 주얼리만의 공간을 완성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하루 다섯 명,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시간이 갈수록 멈춰 서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상담 의자에 앉는 사람도, 실제 반지를 맞추는 고객도 늘어납니다. 주변 샵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잠시였습니다. 토탈형 매장 특성상 주변 브랜드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배운 새로운 기회
점차 많은 고객님들을 만나게 된 한스 주얼리. 더 나은 디자인, 더 나은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자연스레 수준이 한층 높았던 일본 주얼리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고, 고민할 찰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목적지는 동경의 긴자 거리. 하루에 5~6곳의 주얼리 브랜드를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손수 룩북을 모아 그들의 경험을 체득해갑니다.
관심있는 몇 업체를 선정하고, 컨택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의 판매 방식, 즉 ‘프로세스’를 배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중 한 브랜드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j.c.bar’. 이 브랜드의 판매 방식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장이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것도 놀라웠지만, 고객 대면 자리에서 실물 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가장 신선했습니다.
판매를 위해서라면 100개라도 꺼내서 보여주고, 착장해주던 한국의 세일즈 문화와는 정반대의 모습. 호기심은 물론, 원리와 속뜻이 궁금해졌습니다. 2박3일 간의 설득 끝에 주어진 만남의 기회. 진솔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주얼리에 대한, 반지에 대한 생각을 전하면서 단순히 카피가 아니라, 이 프로세스를 한국에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한스 주얼리 x J.C.BAR
아직 첫 만남이 선하게 기억납니다. 분명히 의심의 눈초리였습니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한국에서 온,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경계를 허물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진솔한 마음이 통해서 였을 겁니다. 끊임없이 메일과 전화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며, 같지만 다른 주얼리 시장의 이야기를 나눠갑니다.
J.C.BAR의 프로세스는 온통 고객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신랑, 신부가 자리에 앉으면 우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원하는 반지 스타일&디자인이 아니라 ‘처음 만난 장소, 주로 하던 데이트 방식, 언제 처음 손을 잡았는지, 첫 키스는 언제였는지, 함께하는 취미는 무엇인지, 하는 일은 뭔지, 함께 꿈꾸는 소망은 또 무엇인지’ 등을 묻고 듣습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오로지 고객의 이야기가 담긴, 고객에게 의미있는 반지를 스케치합니다. 약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온전히 몰입해 하나뿐인 디자인을 고안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고객. 스케치를 공유하고, 논의, 보완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만의 반지 실루엣이 완성되어 갑니다. 그야말로, 리얼 오더메이드.
한영진 대표는 평소 어머니가 강조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반지는 제품을 사는 사람의, 제품을 착용할 사람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오더메이드 프로세스가 그 말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프로세스를 한스 주얼리에 도입하기로 결심합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했던, 어쩌면 잊힐 수 있었던 영진사의 뿌리는 이렇게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됩니다.
한국형 오더메이드 브랜드
일본 주얼리 브랜드 ‘J.C.BAR’와의 협업으로 국내 시장에 본격적인 오더메이드 사업을 전개합니다. 출발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고 차가웠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차이가 상당히 컸기 때문.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스케치를 하는데 걸리는 기간만 2~3개월. 이를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고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민이 시작됩니다. 우리 생각이 틀렸던 걸까? 한국에서 오더메이드 웨딩밴드 문화는 자리 잡기 힘든 걸까? 우리도 다른 브랜드처럼 물량으로 진열, 판매해도 될 텐데.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왜 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고단함만 사무치던 그때, 불현듯 스쳐 지나간 생각.
일본 프로세스를 그대로 차용할 게 아니라,
한국에 맞는 오더메이드로 각색을 해보자!
(3부에서 이어집니다. –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