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시아 히스토리의 시작, 영진사
1970년대. 한 어머니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소일거리를 시작합니다. 쌈짓돈을 모아 안방에 기계를 들이고, 자그마한 반지 만드는 일을 받습니다. 하루 열심히 해야 겨우 냉면 그릇 하나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5천 원 정도 되는 소박한 금액. 어머니는 딸들에게 부족함을 물려주기 싫어, 어려움을 이어주지 않기 위해 수년째 냉면 그릇을 채워갑니다.
성실함과 꼼꼼함을 인정받은 어머니. 더 많은 일을 의뢰받습니다. 늘어난 일만큼, 차곡차곡 돈도 모여 갑니다. 드디어 첫 번째 꿈을 이룹니다. 나만의 공장을 열게 된 것. 1974년 종로, 시계 점포가 밀집되어 있던 후미진 골목 어귀였습니다. 빼곡히 들어선 나지막한 건물 사이, 이름없는 공장 하나가 자리합니다. 어머니의 반지 공장 ‘영진사’는 그렇게 탄생됐습니다.
‘반지 공장’ 영진사
어머니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은 커진 규모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단단한 경영 철학 덧대어져 공장 규모는 조금씩 불려졌습니다. 이내 직원이 서른 명 가까이 늘어 제법 북적이는 공장으로 성장합니다.
당시 지방에서 상경해 숙식이 필요한 직원도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십수 명이 부대끼며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 밥도 먹고, 쉬는 날에는 야유회도 다니며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함께했죠.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나며 소소한 사건, 사고도 생겼습니다. 공장이라는 환경, 공정의 특성상 손을 다치는 일은 부지기수. 오해에서 비롯된 동료들 간의 사소한 다툼도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생각했죠. 공장은 커졌지만, 과연 이게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던가. 함께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안전한 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장 속 작은 매장’ 영진사
어머니는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소비자의 반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공장 안 작은 매장을 냈는데, 매장 이름 역시 공장의 이름과 동일한 ‘영진사’로 짓습니다. 영진사가 본격적으로 유통 사업의 첫 삽을 뜨는 순간.
처음부터 불티나게 팔린 건 아니었습니다. 친인척들, 주변 지인들이 와서 사기 시작합니다. 빛을 내기 시작했던 건 역시나 어머니의 성실함과 꼼꼼함. 그리고 제품을 사는 사람의, 제품을 착용할 사람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래서 작은 일 하나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고객 지향적 경영 철학이 알려지면서 부터였습니다.
영진사는 내로라하는 보석쟁이들이 모인 종로에서 ‘반지 하나는 정말 똑부러지게 만든다.’는 입소문 하나로 당시 업계에서 보기 드문 대기 행렬을 불러 세웁니다. 그렇게 공장 속 작은 반지 매장 영진사는 한국 주얼리 산업의 최초의 행보를 걷기 시작합니다.
‘소매에서 도매로’ 영진사의 확장
영진사의 이야기는 금세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특히 금은방을 운영하던 사장님들의 귀가 쫑긋해집니다. 이 일을 계기로 자연스레 ‘도매’ 사업에 진출하게 됩니다. 영진사만의 디자인으로 구성된 첫 카탈로그를 선보인 것도 이 덕분이었죠.
영진사의 카탈로그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까지, 그야말로 온 동네 금은방에 비치됩니다. 영진사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성장을 마주했고, 더 많은 사람들과 특별한 추억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딸, 현재 오르시아의 한영진 대표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 시점.
광역화된 비즈니스, 영진사의 새로운 이름 ‘한양체인’
작은 공장에서 주얼리&반지 매장으로, 도매 사업까지 진출한 영진사는 상호를 ‘한양체인’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도약의 시즌을 맞이합니다. 전국으로 광역화된 사업에 걸맞은 체제로 변혁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 경제 성장에 발맞춰 주얼리 시장 역시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시장은 커졌지만, 가격 출혈 경쟁이 심해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내면보다 겉면, 과정보다 결과에 매물되어 결과론적으로 낮은 숫자가 많은 선택을 받던 시절. 시장을 차분히 살피던 한영진 대표는 어머니에게 솔깃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합니다.
‘영업용 카탈로그가 말고, 우리만의 책자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국내 최초 ‘순금 디자인북’ 출시
당시 주얼리 시장의 영업 방식은 ‘카탈로그’를 만들어 배포하는 패턴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카탈로그는 영업, 세일즈 목적이기에,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 전부를 담아내는 게 일반적인 모습.
한영진 대표는 이런 정적인 업계 흐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양체인은 판매도 중요하지만, 주얼리가 가진 내면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영업’이 아니다. ‘스타일’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이름부터 남달랐습니다. ‘디자인북’으로 규정합니다. 담긴 내용에는 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일반적인 카탈로그에 담긴 제품이 100개라면, 한양체인의 제품은 30개, 3분의 1밖에 담기지 않습니다. 남는 공간에는 제품과 어울리는 소품을 코디네이션해 스타일을 연출합니다. 한국 주얼리 시장에 판매를 위한 ‘세일즈북’이 아니라 스타일을 제시하는 최초의 ‘디자인북’은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당시 매우 생소했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준비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종로 인근 인사동에서 발로 뛰며 어울리는 아이템을 손수 고릅니다. 일일이 글루건으로 붙여 소품을 만듭니다. 참고할 서적, 자료, 지식이 전무했던 당시였기에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갔습니다.
20대 한영진 대표는 그렇게 모든 디자인과 스타일을 디렉팅하며 오르시아의 전신, 한양체인의 퀀텀 점프의 초석을 마련합니다. 한양체인의 ‘순금 디자인북’은 대히트를 치며, 당시 엄청난 수주를 기록합니다. 남들이 모두 안된다고, 실패할 거라고 했던 디자인북은 한영진 대표의 감각과 고집을 통해 주얼리 시장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의미가 담겨야 진짜 주얼리, 오르시아의 시작
디자인북을 기획한 배경에는 어머니의 오랜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예쁜 반지가 아니라, 볼수록 아름다운, 가치가 커지는 반지. 보기에 예쁜 반지보다 의미가 담겨 더 소중한 반지. 리스트만 나열해 판매하려고 보여주는 ‘쇼잉’은 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가 적어도 각기 담긴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는 게 본연의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한양체인과 주얼리 산업에 작지 않은 발자취를 남긴 한영진 대표. 몇 해 뒤, 주얼리 산업의 신흥 메카로 떠오른 강남으로의 진출을 구상합니다. 파인 주얼리&웨딩 밴드 브랜드, 오르시아(ORSIA)의 서막. 눈에 예쁜 주얼리&웨딩밴드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벅찬 감동을 주는 의미&이야기가 담긴 주얼리&웨딩밴드는 오르시아만 빚어낼 수 있습니다.